굉진

오천 원에서 건빵을 뺀 만큼 (1)

작은배에서 진행하는 [작은 진실] 공모전에 올리지 못한 글을 블로그에서라도 올려봅니다.

주공아파트였다. 부모님께서 바쁘셔서 별로 친하지 않은 친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졌다. 안 친한 사람의 집으로 갈 때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천천히 가는 것이다. 가는 길의 여러 골목길을 기웃거리고 개미들도 발견했다. 쫄쫄히 따라가다보니 댁에 다다르게 되었다.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구석에는 거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빤히 바라보다가 이제는 지겨워져서 금세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낯선 향기라서 좋아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나의 이름을 모른다. 할아버지는 장손녀, 장손자의 이름만을 기억하고 계셨다. 이름이 무엇이라 매해 돌아오는 명절마다 몇 번 소개해 봤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할아버지 집에는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익숙한 얼굴들만 있을 뿐 그 사이에 나는 없다. 할아버지께서는 친하지 않은 손녀에게 떠는 손으로 오천 원을 쥐어 주며 건빵을 사오라고 하셨다. 남은 돈은 용돈으로 하라고 하셨다.

그 오천 원은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미묘한 정을 탄생시켰다. 서로 이름을 모르는 안 친한 사이에서 오천 원을 거래한 사이가 되었다. 나는 오천 원으로 마트에서 건빵을 사고 남은 돈으로 이구동성 과자(피자 과자)를 샀다. 할아버지께서는 침대에 앉아(누워)계셨고 나는 침대 밑에 앉아, 할아버지는 건빵을, 나는 별사탕을 집어먹으며 함께 티비를 보았다. 할아버지께서 목이 막힌다고 하셔서 물도 가져다드렸다.

그렇게 대충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천 원은 용돈이 아니라 내 시간을 지루하게 보낸 것에 대한 값이었을까 하는 약은 생각도 들었다. 그 이후로는 주공아파트에 잘 가지 않았다. 시간이 남더라도 놀이터에서 흙파기를 택했다. 가기 싫기보다는 조금은 귀찮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할아버지께서는 언니(첫째)를 기억하지 못했다. 다른 많은 것도 기억하지 못하셨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집에서 약 냄새가 나는 요양원으로 보내졌다. 어른들은 시끄러운 이야기를 했다. 중국에서 지내던 큰아빠가 갑자기 주공아파트에 살기도 했다. 괸당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할아버지는 명절에 큰집에 오시지 않았다. 나는 내 이름을 소개할 기회를 놓쳤다. 앞으로도 소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우리는 친하지는 않았지만 오천 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괜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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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Anonymous — Dec 9, 2024: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